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To All the Boys I’ve Loved Before》는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의 비밀 편지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안엔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혼자만 알고 싶었던 감정, 들키고 싶지 않았던 상상, 그리고 결국 피할 수 없었던 진짜 사랑이 담겨 있다. 이 영화는 단순한 10대 로맨스가 아니다. 사랑이란 감정이 얼마나 유치하고, 동시에 얼마나 진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섬세하고 예쁜 감정의 성장기다.
1. "그냥 혼자 좋아했을 뿐인데요" – 라라 진의 비밀
주인공 라라 진 코비는 상상 속 연애를 즐기는 소녀다. 책을 좋아하고, 글을 쓰고, 감정 표현에는 서툴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사랑에 진심이다. 그녀는 그동안 마음을 품었던 남자들에게 편지를 썼지만 보내지 않았다. 그건 고백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정리하는 의식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 편지들이 모두 우연히 발송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라라 진이 몰래 좋아했던 어린 시절 친구, 여동생의 남자친구, 학교의 인기남… 모두가 그녀의 편지를 받아버린다.
사랑이 상상에서 현실로 튀어나온 순간. 라라 진의 고요했던 일상은 예상치 못한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시작한다. 편지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심장이 떨어질 것 같은데, 상대는 대놓고 그 감정에 반응한다. 그리고 그 중 한 명, 피터 카빈스키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다가온다.
2. 가짜 연애, 진짜 감정 – 피터와 라라 진
모든 사건의 핵심은, 라라 진이 편지를 보낸 상대 중 하나인 피터 카빈스키라는 소년이다. 그는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고, 겉으론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픔과 혼란을 안고 있는 인물이다.
둘은 서로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가짜 연애 계약을 맺는다. 피터는 전 여자친구의 질투를 유도하고 싶었고, 라라 진은 다른 편지 수신자들과의 불편함을 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계약 연애’는, 서서히 진짜 감정을 끌어올린다.
어색했던 첫 데이트, 말은 안 하지만 챙겨주는 디테일, 질투 아닌 척하며 불편해지는 표정. 처음에는 피터가 그저 '행동만 연애하는' 소년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의 진심은 행동에서 드러난다. 라라 진 역시 처음엔 피터와 손잡는 것조차 연기라고 여겼지만, 어느새 그의 눈빛을 의식하고 있었다.
둘 사이의 미묘한 감정선은 관객을 설레게 만든다. '이거 연기 맞아?' 싶은 순간이 늘어나고, ‘이젠 진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 때쯤, 두 사람 역시 서로의 진심을 조금씩 마주하게 된다.
3. 로맨스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 –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정
《To All the Boys…》 시리즈는 로맨스만 그리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나’를 바꾸는 데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준다. 라라 진은 그동안 자신을 보호하려고 상상에 머물렀다. 실제 감정보다 상상의 사랑이 더 편했기 때문이다.
피터를 만나고, 가짜 연애를 하며 웃고 싸우고 화해하면서 그녀는 ‘사랑이란 결국 두렵고 복잡하더라도, 몸으로 겪어야 아는 감정’이라는 걸 배워간다. 소극적이고 내성적이던 라라 진은 점차 외부와의 감정 접촉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또한 그녀는 언니의 연애와 자신의 감정, 여동생과의 관계, 엄마를 잃은 가족의 틈을 조금씩 메우며, '타인에게 상처받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타인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누군가와 사귀게 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라라 진은 더 이상 편지를 보내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감정을 직접 말로 전하고, 행동으로 보여준다. 그것이 어색하더라도, 상처받더라도 말이다.
4. 사랑이란 결국, 솔직해지는 용기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울림은 “사랑은 용기”라는 메시지다. 편지를 쓰는 것도 용기, 편지가 보내졌을 때 책임지는 것도 용기, 그리고 가짜 연애가 진짜가 되었을 때 먼저 고백하는 것도 용기다.
피터는 라라 진을 가볍게 보지 않고 한 사람의 세계로 대한다. 그는 단순한 계약 상대에서 ‘감정을 나누는 파트너’가 되고, 라라 진 역시 자신이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더 이상 숨기지 않게 된다.
우리가 이 영화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는 그저 로맨틱해서가 아니다. 사랑 앞에서 솔직해지는 인물들의 변화가 진심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각자의 현실에서도 경험해온 ‘어설픈 감정의 성장’과 맞닿아 있기에, 영화는 더 이상 허구로 느껴지지 않는다.
결론: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순간, 그건 진짜였다
《To All the Boys I’ve Loved Before》는 한 편의 가벼운 십대 로맨스로 시작하지만, 엔딩을 보고 나면 왠지 오래된 일기장을 꺼내보게 만드는 영화다. 혼자 써두고 절대 들키고 싶지 않았던 감정, 그 감정이 들켜버렸을 때의 당황스러움, 그리고 결국 그게 우리의 가장 진짜였던 마음이었음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
라라 진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우리가 한때 사랑했던 사람들, 마음속에만 간직했던 그 감정들, 표현하지 못했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그 모든 마음들이 이 영화 속에서 다시 되살아난다.
《To All the Boys I’ve Loved Before》는 우리에게 말한다. “괜찮아, 그 모든 감정은 진짜였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