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Pain Hustlers》는 미국에서 실제 일어난 마약성 진통제 스캔들을 배경으로, 평범했던 한 여성이 자본주의의 먹잇감이 되어가는 과정을 추적하는 실화 기반 드라마다. 생존을 위해 시작한 일이 어떻게 욕망이 되고, 결국 파멸로 이어지는지를 강렬한 연출과 날카로운 시선으로 파고든다. 이 영화는 '윤리'와 '이윤'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선택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시스템의 민낯을 폭로한다.
1. 생존에서 욕망으로 – 벼랑 끝에서 시작된 추락의 비극
주인공 리자 드레이크(에밀리 블런트)는 삶의 마지막 끈을 붙잡고 있는 여성이다. 싱글맘으로 살아가며 딸의 학비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리자의 현실은 사회안전망의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연히 만난 제약회사 영업맨 피트 브레넌(크리스 에반스)을 통해 그녀는 ‘잘렌’이라는 몰락 직전의 제약회사에 들어가게 된다.
리자의 첫 출발은 단지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고급 오피스텔도, 억대 연봉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탁월한 말솜씨와 상황 파악 능력, 그리고 벼랑 끝에서 단련된 실행력으로 빠르게 두각을 드러낸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리자의 ‘성공’이 너무도 매력적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그녀는 브로커, 의사, 환자들 사이에서 완벽하게 조율하고, 제약사의 실적은 순식간에 수직 상승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녀가 판매하는 제품이 마약성 진통제 ‘론세르’라는 것이다. 이는 FDA가 승인하지 않은 고위험 약물이었고, 리자는 이를 강제로 의사들에게 처방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환자들의 중독과 부작용은 계속 쌓이지만, 리자는 점점 더 깊이 빠져든다.
그녀는 단지 딸을 위해 돈이 필요했던 평범한 엄마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명품 옷, 명품 차, 그리고 높은 사회적 지위를 자연스럽게 소비하기 시작한다.
생존은 더 이상 이유가 아니었다. 욕망이 동력이 된 순간, 추락은 시작된다.
2. 윤리와 이윤의 경계 – 시스템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Pain Hustlers》는 미국 제약 업계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부패했는지를 아주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 처방을 늘리기 위한 리베이트
- 마케팅 명목의 불법 세미나
- 의사와 제약회사의 공모
- 환자에게는 과잉진단과 과다처방
영화의 중반부는 ‘잘렌’이 회사의 성장을 위해 환자들의 고통을 어떻게 도구화하는지를 전방위적으로 드러낸다. 의사들은 회사가 제공하는 세미나와 리베이트에 적극적으로 응하며, 진짜 치료보다 ‘시장을 관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다.
리자는 처음엔 이 시스템에 대해 알지 못했지만, 점점 ‘시스템의 일부’가 된다. 그녀는 더 이상 피트의 명령에 따르는 직원이 아니라, 자신의 네트워크와 수완을 통해 직접 병원을 사로잡고, 의료 윤리를 무너뜨리는 장본인이 된다.
이 영화의 가장 냉정한 시선은 바로 이 지점이다.
리자만 나쁜가? 아니다. 그를 이용한 피트, 그들을 움직이는 회사의 CEO, 그리고 이 모든 걸 방관한 정부 시스템까지 전체가 공모자다.
실제로 미국 내 오피오이드 계열 진통제 남용 사태는 수십만 명의 중독자와 수만 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영화 속 ‘론세르’는 바로 그 현실의 축소판이며, 자본주의는 때로 생명을 도구로 취급한다는 냉정한 현실을 담고 있다.
3. 중독은 약이 아니라 돈이었다 – 인간은 무엇에 중독되는가
《Pain Hustlers》가 던지는 가장 강력한 질문은 이거다. “정말 중독은 약에만 해당되는가?”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섭게 중독된 존재는 약물에 빠진 환자가 아니라, 돈에 중독된 리자다. 처음에는 월세 걱정, 딸의 치료비 걱정이 전부였던 그녀는, 회사가 성장할수록 점점 더 큰 금액의 보너스를 받고, 자신이 ‘상류층’의 일부가 된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
- 그는 더 이상 환자의 눈을 보지 않는다
- 더 이상 약이 뭔지 묻지 않는다
- 단지 다음 실적, 다음 계약, 다음 처방만을 본다
감독은 이러한 리자의 변화를 아주 정교하게 쌓아간다. 화려한 배경음악, 오피스텔 내부 장식, 자동차 내부의 조명 등 시각적 요소들은 리자가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내면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그녀는, 환자가 죽고 언론이 문제를 보도하고, 검찰이 들이닥친 후에야 자신이 얼마나 멀리 와 있었는지를 깨닫는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딸 앞에서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하는 장면은 단순한 감정 연기가 아니라, 스스로가 인간으로 돌아가기 위한 최후의 시도로 그려진다.
4. 에밀리 블런트의 명연기와 연출의 설계력 –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픽션
이 영화가 높은 완성도를 인정받는 이유는 단순히 이야기의 진정성 때문이 아니다. 에밀리 블런트의 연기, 크리스 에반스의 변신, 그리고 감독의 연출 미학이 절묘하게 맞물리며 ‘극적인 현실’을 만들어낸다.
에밀리 블런트는 리자라는 캐릭터를 단순한 희생자도 아니고, 단순한 악인도 아닌 매우 복합적인 인물로 표현한다. 그녀는 영리하지만 위태롭고, 야망이 있지만 죄책감도 느낀다. 딸 앞에서는 부드럽지만, 회의실에서는 냉혹하다. 이 극단적인 양면성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연기는 이 영화의 중심축이다.
크리스 에반스는 여유로운 카리스마와 냉소적인 현실주의자로 분해, 이전의 ‘히어로’ 이미지를 완전히 지운다.
감독 데이비드 예이츠는 전체적인 톤을 밝고 경쾌하게 유지하면서도, 서사의 어둠을 이중 구조로 담아낸다. 마치 ‘쾌락적으로 소비되는 비극’을 보는 듯한 감각은 관객으로 하여금 더욱 충격을 받게 한다.
특히 후반부 실제 뉴스 영상, 피해자의 인터뷰가 삽입되며 “이건 영화가 아니라, 실제다”라는 걸 다시금 각인시킨다.
결론: 우리가 살아가는 시스템은 누구를 위해 움직이는가?
《Pain Hustlers》는 단순한 내부고발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한 사람의 몰락을 통해 우리 사회 전체가 어떻게 비윤리적 선택을 정당화하고 있는지를 고발한다.
- 의료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 시스템은 왜 탐욕에 더 익숙한가?
- 우리는 정말 '선택'이라는 걸 할 수 있는가?
리자는 마지막에 모든 걸 잃는다. 하지만 아이 앞에서 처음으로 "내가 틀렸어"라고 말한다. 그 말은 진짜 회복의 시작이다. 파멸도, 중독도, 시스템도 모두 이길 수 있는 건 결국 자신의 인간됨을 다시 기억하는 일이라는 것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