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Damsel》은 전통적인 동화 판타지에 망치를 들고 뛰어든다. 백마 탄 왕자, 구해지는 공주, 예언된 운명… 그 모든 익숙한 서사는 이 영화에서 철저히 해체된다.
밀리 바비 브라운이 연기한 주인공 ‘엘로디’는, 표면적으로는 ‘완벽한 판타지 속 공주’다. 미모, 배려심, 가문의 명예, 이상적인 결혼… 하지만 결혼식이 끝난 순간, 그녀는 절벽 아래로 내던져진다. 말 그대로. 그녀는 왕국이 매번 용에게 제물로 바치는 신부였던 것이다.
이 영화는 말한다. “공주는 이제 기다리지 않는다. 스스로 살아남는다. 그리고, 복수한다.”
1. 공주와 용, 구출 서사의 붕괴 – “이제 이야기를 쓴 건 그녀다”
우리는 수십 년간 한 가지 구조에 익숙해졌다. 공주는 위험에 처한다. 왕자가 그녀를 구한다. 두 사람은 입을 맞추고, 해피엔딩.
하지만 《Damsel》은 그 첫 장면부터 그런 ‘전형성’을 정면으로 배신한다. 엘로디는 왕자와 결혼식을 올린다. 모든 게 이상적이다. 하지만 그 다음 순간, 그녀는 절벽 아래 용의 동굴로 내던져진다. 새 왕비는 사실 새 제물이었다.
왕국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희생시킨다. 그들의 권력, 생명, 안전은 언제나 여성이 ‘침묵하는 것’ 위에서 유지되었다.
그러나 엘로디는 침묵하지 않는다. 그녀는 울지도 않고, 도움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그녀는 “왜?”를 묻는 대신,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결심만 한다. 이때부터 《Damsel》은 전통적인 판타지와 완전히 결별한다. 구출의 쾌감이 아닌 생존의 고통을 그린다. 엘로디는 드레스가 찢어지고, 상처투성이가 되며, 바위와 피비린내 속에서 조금씩, 사람이 아닌 ‘전사’로 변모한다.
2. 여성 주체성의 복권 – “이제 우린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
이 영화의 가장 깊은 울림은, 그저 여성이 ‘싸운다’는 데 있지 않다.
엘로디는 마법 소녀도 아니고, 초인적인 전사도 아니다. 그녀는 단지, “더 이상 아무도 나를 구하러 오지 않는다”는 절망 속에서 자기 몸을 움직여 살아남기로 한 인간이다. 이 지점에서 《Damsel》은 단순한 반전 판타지를 넘어 현대 여성의 자화상이 된다.
이 사회에서 여성은 수없이 배신당했다. 신뢰하던 가정, 연인, 제도, 시스템. 그 어디서도 완벽히 보호받은 적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엘로디가 용의 동굴에서 “누구도 오지 않을 거야”라고 중얼이는 장면은 단순한 허구가 아니다. 그건 지금 여기, 이 시대의 여성들이 일상에서 끊임없이 마주하는 진실이다. 하지만 영화는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엘로디는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자신이 직접 싸우기로 한다. 그 싸움은 기술적이지 않다. 날렵하지도 않고, 멋지지도 않다. 그저 끈질기고, 처절하고, 피로 물든다. 하지만 바로 그 싸움 속에서, 그녀는 더 이상 구출 대상이 아닌, 이야기의 주인이 된다.
3. 배신과 복수, 그리고 여성 서사의 완성
《Damsel》의 가장 압도적인 감정선은 ‘복수’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앙갚음이 아니다.
엘로디는 단순히 ‘용을 이겨서’ 복수하지 않는다. 그녀는 배신당한 믿음을 스스로 회복하는 과정을 통해, 이야기 속에서 완전히 자기 자신을 되찾는다. 그녀가 다시 성으로 돌아가 ‘진실을 알린다’는 식의 해피엔딩은 없다. 그녀는 더 이상 왕국에 속하지 않고, 그곳을 다시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이 영화는 말한다. “이 싸움의 끝에, 그 어떤 영광도 필요 없다. 나는 그냥, 나로 돌아간다.”
왕자, 왕국, 가족, 모두 그녀를 희생시켰다. 그녀는 그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것을 불태우지도 않는다. 그저 등진다.
엘로디는 이야기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를 다시 쓴 사람이 된다.
4. 밀리 바비 브라운의 커리어 최고 연기
《Damsel》은 밀리 바비 브라운이 단지 넷플릭스의 인기 배우가 아니라, 감정과 메시지를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 배우임을 입증한 작품이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미소년처럼 서늘한 눈빛부터, 절벽에 매달려 숨이 넘어가는 얼굴, 복수 직전의 맨발 투혼까지 폭발적인 감정의 범위를 오가며 관객을 몰입시킨다. 특히 아무 대사 없이 용과 대치하는 마지막 10분은 감정만으로, 숨결과 동공 떨림만으로 “나는 살아남을 거야”라는 메시지를 압도적인 긴장감으로 전달한다. 그녀 없었다면 이 영화는 절대 이만큼의 파괴력을 가질 수 없었다.
결론: 더 이상 우리는 이야기 속에서 구해지지 않는다
《Damsel》은 판타지 장르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일수록, 가장 강하게 충격받게 만드는 영화다.
왜냐하면 그동안 너무도 당연하게 소비해온 ‘구해지는 여성’, ‘입맞춤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사실은 폭력적이었음을 통렬하게 역설하기 때문이다. 이제 이야기는 바뀌었다. 그리고 그 첫 문장을 《Damsel》이 썼다.
“공주는 구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누구도 다시는 구해지지 않아도 될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일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