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로맨틱 코미디 《Set It Up》(2018)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너무 진지하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게 다룬다. 낭만을 믿지 않는 세상, 회사에 치이고 야근에 무너지는 현실 속에서 그들은 연애도 업무처럼 ‘효율적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포인트에서 우리는 웃고, 설레고, 때로 울컥한다. 이 영화는 MZ세대의 연애감각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포착한다. 그리고 그렇게 말한다. “사랑도 요령이 필요하긴 하지만… 결국 마음은 예상 밖에서 온다.”
1. 사랑도 야근처럼 해야 하나요? – 직장에 갇힌 청춘들
영화의 배경은 뉴욕. 주인공 하퍼(조이 도이치)와 찰리(글렌 파월)는 각각 언론사와 금융사의 비서로 일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말 그대로 ‘상사의 인생’을 대신 사는 중이다. 출근, 야근, 퇴근 없음. 회식, 출장, 심지어 데이트까지 대신 조율해야 한다. 자신의 인생은 뒷전이고, 매일이 일의 연속일 뿐이다.
하퍼는 기자가 꿈이고, 찰리는 승진이 목표지만 현실은 팍팍하고 냉정하다. ‘직장 로맨스’는 커녕, 누굴 만날 시간도, 감정을 가질 여유도 없는 MZ의 초상이다. 그래서 둘은 결심한다. “우리 상사들끼리 엮어서, 우리를 좀 쉬게 만들자.”
이 황당한 계획이 바로 《Set It Up》의 핵심 장치다. 사랑은 둘이 하는 게 아니라, 대신 만들어주는 것이다. 일도 아니고 연애도 이렇게 ‘세팅’해야 하는 세상. 그게 요즘이다.
2. 로맨스, 시스템으로 설계하다 – 사랑을 꾸며주는 두 사람
하퍼와 찰리는 각자 상사인 커스틴(루시 리우)과 릭(테이 디그스)을 억지로 이어주기 위한 작전을 실행한다.
엘리베이터 갇힘 상황 만들기, 우연한 식사 자리 세팅, 잘못 보낸 문자 시나리오 작성 등 모든 장면이 철저히 계산된 ‘연애 시뮬레이션’이다. 하지만 그 시나리오를 짜는 과정에서 하퍼와 찰리 자신도 모르게 서로를 알게 되고, 웃고, 다퉈가며 조금씩 감정이 쌓여간다. 흥미로운 건, 둘은 처음부터 서로의 목적을 알고 시작했다는 점이다. 가짜 연애는 아니지만, 그들의 만남은 ‘자기 이익’을 전제로 시작된 현대적 관계의 전형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서로를 더 편하게 대하고, 더 솔직하게 비판하고, 결국엔 진짜로 이해하게 된다.
하퍼는 찰리에게 말한다. “넌 네가 잘나서 그런 척하지만, 사실 되게 불안해 보여.”
찰리는 하퍼에게 말한다. “넌 멋진 사람이야. 다만 널 증명하려고 너무 애쓰는 게 보여.”
이런 대사는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다. 요즘 세대가 사랑에서 느끼는 가장 큰 감정 – 불안과 인정 욕구를 정확하게 짚어낸다.
3. 요즘 사랑의 키워드: 우연보다 공감, 이벤트보다 관계
《Set It Up》은 클래식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따르면서도 현대적 문법으로 ‘사랑의 조건’을 다시 짠다.
이 영화에서 사랑은 우연히 마주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획하고, 설계하고, 실수를 공유하며 성장하는 과정이다.
하퍼와 찰리는 이벤트보다 말실수, 화해, 야식 먹기, 엘리베이터에서 널브러지기 같은 매우 평범한 순간들에서 마음을 쌓아간다.
이건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연애’와는 다르다.
- 꽃다발 대신 감자튀김
- 고백 대신 조용한 배웅
- 키스보다 먼저 찾아오는 ‘안도감’
이 영화의 진짜 포인트는, “나도 저런 연애 하고 싶다”가 아니라 “나도 누군가에게 저렇게 편해지고 싶다”는 감정이다.
4. 결론: 연애에도 템포가 있다 – 느려도 제대로 연결되면 되는 거야
《Set It Up》은 요즘 세대의 연애를 지나치게 심각하게 그리지 않는다. 그 대신, 웃음과 현실적인 디테일을 통해 오히려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운명이 아니었다. 오히려 회사의 스트레스와 권태가 그들을 엮어줬을 뿐이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서로의 허점, 고민, 기대를 함께 겪으며 관계는 '만들어져 간다'.
그리고 마지막 고백 장면은 이 영화의 정서를 완벽하게 대변한다.
“너랑 있으면… 일이 끝나고도 내가 살아있는 사람 같아.”
사랑은 결국 특별해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함께 있을 때 ‘내가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지는 감정에서 싹트는 것.
《Set It Up》은 그런 현대적이고 인간적인 로맨스의 정의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래서, 이 영화는 커피 한 잔 하며 가볍게 보기 좋지만, 다 보고 나면 마음이 묘하게 따뜻해지는 데일리 행복 영화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