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년대 아일랜드 시골 마을, 아무것도 먹지 않고도 살아가는 ‘기적의 소녀’와 그녀를 관찰하게 된 여성 간호사. 《The Wonder》는 믿음과 과학이라는 겉옷을 입고 있지만, 그 이면엔 여성의 몸, 사회의 억압, 상실의 트라우마, 그리고 인간 내면의 구원이라는 깊은 서사가 숨어 있다. 절제된 연출과 강렬한 메시지로 관객의 양심과 감정을 정면으로 겨눈다.
1. 기적은 존재하는가? – 4개월간 금식하는 소녀와 시작된 이야기
1862년, 대기근 이후의 아일랜드. 영국 출신의 간호사 라이브 라이트라이브(플로렌스 퓨)는 조용하고 폐쇄적인 시골 마을에 도착한다. 그녀에게 내려진 임무는 단순하지만 기이하다. 4개월째 아무것도 먹지 않고도 살아 있는 소녀, 안나 오도넬을 관찰하라.
마을 사람들은 안나를 신의 은총이자 기적의 산 증인으로 여긴다. 그녀가 성스럽게 금식하고 있으며, 이는 “신의 사랑” 덕분이라고 믿는다. 안나는 실제로도 거식 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정신력과 의연한 태도를 유지한다.
이곳에서 라이브는 과학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관찰자로서의 입장을 지키려고 애쓰지만, 곧 마을 전체가 사실을 외면하고 믿음을 강요하는 구조임을 깨닫게 된다. 소녀를 위해 진심을 다하고 있는 듯 보이는 부모조차도 그 믿음 뒤에 자신의 죄의식과 사회적 명예를 덮고 있다는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안나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마을의 자부심이며, 신의 축복으로 여겨지는 이 환상은 곧 아이의 생명과 맞바꾼 집단적 망상이다.
2. 믿음이라는 이름의 폭력 – 과학과 종교, 그리고 여성의 신체
이 영화의 가장 큰 갈등 구조는 단순한 ‘과학 대 종교’가 아니다. 여성의 신체를 어떻게 사회가 정의하고 이용해왔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 안나는 오빠의 죽음 이후 “그를 대신해 속죄해야 한다”는 신념에 빠져 금식을 시작했다.
- 어머니는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딸의 고통을 묵인하거나 종교적으로 해석한다.
- 신부와 의사는 이 상황을 기적의 증거로 포장하며 침묵하거나 적극적으로 조장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안나가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신성한 희생’으로 미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이 겪는 통증과 절제, 순결, 침묵, 죽음을 가치 있는 것으로 신격화한다. 반대로, 라이브는 이 상황을 명백한 학대이자, 사회적 병폐로 인식한다. 그녀는 과학이라는 논리보다, 자신이 잃은 딸에 대한 감정적 기억으로 이 아이의 상황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여기 있다. 기적을 믿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 믿음을 위해 누군가의 고통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의 구조가 문제다.
3. 삶과 죽음, 그리고 여성의 선택권 – 그 누구도 아이의 편이 아니었다
안나의 금식은 단순한 식사 거부가 아니다. 그것은 오빠의 죽음과 자신이 겪은 학대에 대한 속죄 행위이며, “신 앞에서 순결하고 고귀한 존재로 인정받기 위한 자기희생”이다.
그리고 그 주변의 모든 어른들—어머니, 신부, 지역 위원회—는 이 아이의 결정이라는 이름으로 그 희생을 묵인하고, 더 나아가 장려한다. 하지만 진실은, 아무도 이 아이의 진짜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어머니는 종교라는 이름 아래 죄책감을 감춘다.
- 신부는 교리를 유지하기 위해 침묵한다.
- 의사는 관찰이라는 이름으로 방관한다.
오직 라이브만이 아이의 생명 그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고, 그녀의 결정을 의심하며 질문을 던진다. 이 장면들은 여성의 생명권, 선택권, 신체적 자율성에 대한 현대적 문제의식까지 연결된다.
4. 슬픔은 연대 속에서만 회복된다 – 두 여성의 상처와 치유
영화 후반부에 이르면, 이야기는 믿음과 과학의 대립을 넘어서 두 여성—라이브와 안나—가 서로의 상처를 마주하는 장면들로 집중된다.
- 라이브는 과거 전쟁 중 딸을 잃은 경험이 있고, 매일 허공을 바라보며 상상 속 식사를 한다.
- 안나는 오빠의 죽음 이후, 자신이 사랑했던 존재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깊은 죄책감을 품고 있다.
이 둘은 외형상 간호사와 환자의 관계지만, 실제로는 트라우마를 공유한 두 생존자다. 그들의 연결은 언어가 아닌, 눈빛, 포옹, 침묵, 그리고 선택의 행동으로 전해진다. 결국 라이브는 안나를 ‘죽은 것처럼’ 꾸미고, 그녀에게 새로운 이름과 삶을 부여한다. 그 선택은 기적을 믿지 않고, 직접 기적을 만든 사람의 선택이다.
5. 연출, 시선, 배우의 내면 – 이 영화가 완성도 높은 이유
《The Wonder》는 주제와 감정뿐 아니라 영화적 기법과 연출에서도 매우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 영화 세트가 실제임을 보여주는 메타 오프닝: 관객은 “이건 픽션입니다”라는 전제를 알면서도 점점 몰입하게 된다.
- 절제된 색채: 차갑고 음산한 푸른 톤은 생명력의 소멸과 감정의 정체 상태를 시각화한다.
- 사운드 디자인의 절제: 배경음악이 거의 없고, 숨소리와 바람 소리, 벽시계의 초침 등 미세한 소리가 감정을 부각시킨다.
- 카메라워크: 대부분의 장면은 롱테이크와 고정 구도를 통해 마치 연극처럼 구성되어 있다.
무엇보다 플로렌스 퓨의 연기는 이 영화의 심장이다. 그녀는 대사보다 표정, 눈빛, 미세한 호흡으로 감정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플로렌스 퓨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힐 만큼 내면의 연기와 절제된 표현이 탁월하다.
결론 – 진짜 기적은 믿음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려는 선택이다
《The Wonder》는 말한다. 믿음을 강요하는 것도 폭력이고, 진실을 회피한 채 고통을 미화하는 것도 잔인함이다.
이 영화는 “기적은 믿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가장 고요한 방식으로, 그러나 뼈를 울리는 깊이로 전달한다.
안나는 죽지 않았다. 그녀는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자신을 위해, 처음으로 자신이 한 선택이었다. 라이브는 아이를 구했고, 자신도 상처에서 조금은 벗어났다. 이 영화는 종교 영화도, SF도, 드라마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다룬 영화이며, 고통을 마주보고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