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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May December – 기억, 연기, 윤리, 감정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인간

by justin3 2025. 7. 17.

May December

 

넷플릭스 영화 《May December》는 단순한 문제작이 아니다. 20년 전 충격적인 스캔들의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이를 연기하려는 배우의 시선을 교차시켜 인간 감정, 도덕, 기억의 모호함을 섬세하게 파고든 심리극이다. 절제된 연기와 미장센, 질문을 던지는 서사가 빼어난 작품으로, 2024년 가장 논쟁적이고도 완성도 높은 영화 중 하나로 꼽힌다.

1. 사건은 끝났지만, 감정은 아직 남아 있다 – ‘기억’은 봉합되지 않았다

20년 전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스캔들. 36세의 여성이 13세 소년과의 관계로 법적 처벌을 받은 뒤 출소, 결혼, 그리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두 사람은 평온하다. 함께 아이를 키우고, 가정도 안정적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영화화하려는 배우가 찾아오면서, 감정의 균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레이시(줄리안 무어)는 여전히 자신이 사랑에 빠졌을 뿐이라고 믿는다. 조(찰스 멜턴)는 무던하게 받아들이는 듯 보이지만, 그 안에 잠재된 불안과 피로감은 배우 엘리자베스(나탈리 포트만)의 시선을 통해 천천히 드러난다.

이들은 사회적 시선과 감정의 무게를 함께 짊어진다. 하지만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우리는 진짜 괜찮은 걸까?” 조의 감정은 온전히 자발적이었을까? 아이였던 시절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사랑이 될 수 있을까?

May December는 그 기억의 본질을 파고든다. 단지 무엇이 있었는지가 아닌,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그레이시는 과거를 이야기할 때조차, 그것을 고백이 아닌 스토리로 전달한다. 조차마저도 자신이 ‘당시 어떤 감정을 느껴야 했는지’를 헷갈려 한다.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만들어진 감정의 왜곡일 수도, 감정 자체의 부재일 수도 있다.

“그들이 기억하는 건 그때의 감정이 아니라, 그 감정을 설명하는 방법일지도 몰라요.”

감정은 지나가지만, 감정의 서사는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복잡해진다. 그들의 ‘기억된 감정’은 더 이상 순수하거나 진실하다고 말할 수 없다.

2. 감정을 재현하려는 배우 – ‘연기’란 진실을 도둑질하는가?

엘리자베스는 배우다. 이 커플의 스캔들을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그레이시를 연기할 예정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직접 찾아온다. 이 장면부터 May December는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윤리적 딜레마를 던지는 ‘메타 영화’가 된다.

엘리자베스는 관찰자로 시작하지만, 곧 적극적인 개입자로 변한다. 그녀는 그레이시가 굽는 파이의 레시피, 말투, 행동을 그대로 흡수한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당신을 이해하고 싶어요.” 하지만 관객은 의심하게 된다. 정말 이해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저 더 정교한 ‘연기’를 위해 사람의 고통을 모방하려는 건 아닐까?

그레이시는 처음에는 협조적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불쾌함을 느낀다. 자신의 과거를 배우가 모방하고 흉내 내는 그 장면은, 일종의 재가해처럼 다가온다. 배우의 예술 행위가 누군가의 감정적 영역을 침범할 수 있는가? 예술은 모방인가, 도둑질인가?

감정은 그저 흉내 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엘리자베스는 점점 더 ‘그녀가 되려’ 한다. 마치 역할을 소유하듯, 인물의 인생을 뒤집어쓰려 한다.

“당신은 내가 만든 현실을 훔쳐가려고 해요.”

이 대사는 영화 속 캐릭터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순간이자, 예술과 윤리의 충돌지점이다. 연기는 타인의 감정을 ‘공감’해야 하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 공감이 타인을 위협한다면 과연 그것이 옳은 것인가?

3. 모호한 피해자, 모호한 가해자 – 윤리적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이 영화의 가장 도전적인 지점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정의’를 쉽게 단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는 당시 13살이었다. 사회적 기준으론 명백한 피해자다. 하지만 그는 지금 “사랑”을 말하고 있다. 그레이시는 처벌을 받았지만, 지금은 아이를 키우며 정상적 삶을 살고 있다.

우리는 흔히 피해자는 상처받은 모습, 가해자는 냉정한 인물로 규정한다. 하지만 《May December》는 그 이분법을 무너뜨린다. 상처받은 사람이 웃을 수도 있고, 가해자가 상냥할 수도 있다. 그래서 더 불편하고, 그래서 더 복잡하다.

감독은 이 모호성을 클로즈업이 아닌, 거리감 있는 시선으로 포착한다. 정면보다는 옆모습, 울음보다는 침묵, 고백보다는 행위의 반복. 이 모든 연출은 우리가 감정에 쉽게 몰입하지 못하도록 거리 두기를 시도한다. 그 불편함 속에서 윤리는 재정립된다.

결국 영화는 말한다. 시간이 흐른다고 과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잊혀진 것이 아니라, ‘다뤄지지 않은 채’ 봉인된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그 뚜껑을 다시 열었을 때, 우리는 다시 그것과 마주해야 한다.

4. 연기를 멈추는 순간, 감정은 진짜가 된다 – 메타 연출의 완성

영화의 마지막 15분은 ‘연기의 해체’ 과정으로 흘러간다. 엘리자베스는 그레이시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려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녀는 멈춘다. 자신이 카메라 앞에서 연습하던 대사를 말하던 중,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조용해진다. 그것은 연기의 실패인가? 아니면 진짜 감정이 스며든 순간인가?

감정은 재현될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너무 완벽히 재현했기에 실제가 되어버린 것인지. 이 장면은 영화 전체가 던진 질문을 완벽하게 요약한다.

감독 토드 헤인즈는 이 장면에서 어떤 설명도 넣지 않는다. 관객은 오로지 엘리자베스의 눈빛과 표정으로만 그 해석을 만들어야 한다. 카메라 앵글은 움직이지 않는다. 인물은 가만히 있고, 시간만 흐른다. 그리고 우리는 깨닫는다. 감정은 연기할 수 없으며, 연기는 감정을 삼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진짜 감정은 스크립트에 없다. 그건 연기를 멈췄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것.”

결론 – 《May December》는 감정을 다룰 때 우리가 감히 상상하는 선을 넘는다

《May December》는 단지 ‘논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감정이 얼마나 쉽게 소비되고, 연기되고, 왜곡될 수 있는지를 치밀하게 파헤친다.

누군가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는 숭고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이 타인을 침범하는 순간, 예술도 윤리의 경계를 넘는다. 이 영화는 바로 그 경계에 서 있다. 그리고 한 걸음씩, 그 선을 넘는 과정을 보여준다.

감정을 이해한다는 것,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본다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가능한 일인가? 혹은 단지 연기일 뿐인가?

《May December》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당신을 따라다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