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irst They Killed My Father》 작품은 1970년대 캄보디아를 배경으로, 하나의 정치 이념이 어떻게 어린 아이의 삶을 파괴하는지, 그리고 인간성과 생존 사이에서 아이가 겪는 내면의 전쟁을 밀도 있게 담아낸다. 안젤리나 졸리 감독이 연출하고, 실제 생존자인 루웅 웅의 회고록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전쟁이란 어른들의 정치가 아니라, 아이들의 삶을 집어삼키는 비극임을 보여준다.
1. 한 아이의 시선으로 본 전쟁 – ‘루웅’이라는 이름의 기억
영화는 다섯 살 소녀 루웅 웅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평범한 가족과 따뜻한 집, 아버지의 손길, 함께 식사하는 풍경. 하지만 이 모든 일상이 크메르루즈의 집권으로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아버지는 군 정보원이었기에 위험 인물로 간주되고, 가족은 수도 프놈펜에서 강제로 이주당한다. 전쟁이 소녀에게 다가오는 방식은 잔인하게 간접적이다. 누가 총을 들고 싸우는지, 이념이 무엇인지 루웅은 모른다. 그녀가 보는 건, 밥을 굶는 아이들, 한밤중에 끌려가는 어른들, 침묵하는 엄마, 울음을 참는 형제들이다. 이 영화는 전쟁을 군사적 사건이 아닌 감정의 상실과 기억의 붕괴로 묘사한다.
특히 안젤리나 졸리는 대사보다 루웅의 눈빛, 주변의 소리, 감정의 공백으로 긴장을 쌓는다. 소녀는 말하지 않지만, 관객은 그녀의 혼란과 공포,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는 생존 본능을 고스란히 체험한다. 이 영화는 그래서 슬프고 무섭다. 우리는 전쟁을 다룬 수많은 영화 중 이토록 조용하고도 절절한 절망을 느낀 적이 드물다.
2. 아버지를 잃는다는 것 – 사랑과 기억의 단절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영화의 핵심 모티브는 “아버지를 빼앗긴 아이”다. 루웅의 아버지는 지적이고 자애로운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전쟁의 긴장 속에서도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결국 그는 체제에 의해 끌려가 사라진다. 그 순간은 총성이 울리는 것도 아니고, 전투가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단지 딸의 눈앞에서 아버지가 멀어지는 장면, 그것만으로 관객은 숨이 멎을 듯한 슬픔을 느낀다. 아버지가 사라진 이후, 루웅은 감정적 지주를 잃는다. 그녀는 더 이상 울지 않고, 혼잣말도 줄어든다. 웃던 아이는 얼굴에서 표정을 잃고, 자신을 지켜주던 세상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받아들인다.
영화는 ‘아버지의 상실’을 단순한 사망이 아닌 정체성과 인간성의 단절로 그린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는 굶주림, 노동, 공포, 침묵만이 남는다. 이 장면들이 무서운 이유는 총칼이 등장해서가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사랑이 침묵 속에 묻혀버리는 과정을 너무도 현실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3. 아이에서 병사로 – 생존을 위한 감정의 절단
시간이 흐르며 루웅은 크메르루즈의 훈련소에 보내진다. 그곳에서 그녀는 “소녀”에서 “병사”로 길러지는 과정을 겪는다. 처음에는 구호 식량을 기다리던 아이가, 이제는 적을 죽이는 법을 배우게 된다. 진흙 속에서 기어다니고, 총검술을 배우고, 감정을 숨기는 것이 일상이 된다. 이 변화는 전쟁이 어떻게 아이의 인간성을 깎아내고, 단지 명령에 복종하는 존재로 바꾸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약함으로 간주되고, 가족을 그리워하는 것도 ‘체제에 대한 의심’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루웅은 스스로 감정을 봉인한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는 루웅이 적군 병사의 시신을 마주했을 때다. 그녀는 처음에는 무표정으로 바라보다가, 갑자기 트라우마처럼 눈물이 터진다. 이는 죽음에 무감각해진 척하면서도, 인간성을 완전히 잃지는 않은 아이의 양가감정을 보여준다.
결국 루웅은 병사로 길러졌지만, 인간으로 남고자 했다. 그 싸움이야말로 이 영화의 핵심이다. 육체는 적응하지만, 마음은 끝내 저항하는 것.
4. 증오 없이 기억하는 법 – 안젤리나 졸리의 연출 메시지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연출자 안젤리나 졸리의 시선 때문이다. 그녀는 이 영화를 단지 학살의 고발이나, 정치적 비판으로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전쟁 속 인간의 존엄과 연대, 기억의 힘에 초점을 둔다.
영화 속 인물들은 원한을 품기보다는 침묵한다. 사람들은 죽고 사라지지만, 복수보다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였다. 그런 현실 속에서도 루웅은 끝까지 자신이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녀는 사랑하던 사람을 기억하고, 가족과 함께했던 순간을 상상하며 살아간다.
졸리는 폭력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지만, 그 잔인함은 더 크게 다가온다. 카메라가 멀어질 때 감정은 깊어지고, 소리가 사라질 때 우리는 울음을 듣게 된다. 이러한 연출은 영화 전체에 걸쳐 침묵의 힘, 기억의 힘, 인간의 회복력을 강조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루웅이 살아남은 가족과 재회하고, 조용히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핵심이 담긴 결말이다. 용서는 없지만, 이해는 있다. 복수는 없지만, 회복은 시작된다.
결론: 전쟁은 사라지지 않았고, 아이들은 여전히 기억한다
《First They Killed My Father》는 전쟁의 역사나 숫자가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남은 한 아이의 기억을 통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전쟁을 단지 뉴스의 한 장면으로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
루웅 웅은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녀는 말했다. “전쟁은 끝났지만, 내 안에서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단지 보여주고, 묻고,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가슴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조용한 상처’를 남긴다.